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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면(水入面) 지명유래

수입면(水入面)


회양속현 재동사십리 본통구현지할속우본부야(吊四十里 本通構縣地割屬于本府也)라고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다. (철원진관 소속 회양부 1759)


5세기 본도의 전역이 고구려의 판도내에 있을때 문등현이라고 하였으며 세월의 흐름에 따라 죽척파(竹尺波) 또는 문견현(文見縣)으로 개칭하기도 하였다.(이 시대를 고대문명의 발아기라 일컫는다.) 당시 수입면은 통구현의 속령으로 회양도호부에 속해 있다가 1424년 문등현이 수입면에 통합되는등 개칭이 빈번하다 현종 4년(1663) 양구현으로 환원했고 고종 32년(1895) 5월 지방관제 개혁으로 수입면은 양구군에 속해 18개리의 행정구역으로 1945년 광복과 더불어 38도선 이북으로 공산치하에 예속되어 미수복지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 

  • 문등리(文登里)

    • 1759(영조 35년) 당시 수입면은 대정(大井)ㆍ인패(印佩)ㆍ점방(占方)ㆍ조천(鳥川)ㆍ송거(松巨)ㆍ소고개(所古介)ㆍ청송(靑松)ㆍ문등(文登)의 8개의 마을로 454家戶에 2134인(여 1028인)이 거주하였다. 문등리는 75가호에 381인(여176인)이 거주, 일제시대 2일, 7일 개시로 성황을 이루었다. 
  • 송거리(松巨里)

    • 1759년 당시 21호에 118인(여 58인)이 거주하였다.
    • 송거리유원지 : 송거리에 소나무와 잡목이 울창하여 이 고장의 유일한 유원지로 각광을 받아 온 곳

  • 내리(內里)

    • 지리적인 면에서 수입면의 마을중에서 막바지에 위치한다하여 이름하였다.
  • 백현리(栢峴里)

    • 고개에 잣나무가 많이 분포하고 있는데서 이름하였다.
    • 상심포, 하심포 : 깊은 개울이 있었으며 그 위치에 따라 상심포(上深浦), 하심포(下深浦)로 불렀다.
  • 근리(芹里)

    • 미나리가 많이 분포한데 연유하여 이름하였다.
    • 박달령 : 박달나무가 무성하여 이름한 령
    • 구룡 : 구룡으로 산언덕에 마을이 자리하고 조상의 산소도 있었음

  • 수청리(水靑里)

    • 맑고 깨끗한 물이 개울을 지나가니 항시 푸르러 마을 이름을 수청이라 하였다.
    • 어은산(魚隱山) : 높이 1,277m로 수입면내에서 제일가는 고산임
  • 청송리(靑松里)

    • 소나무가 많이 무성하여 연중 푸르다. 1759년 당시 수입면 8개 마을의 하나로 19호에 105인(여 53인)이 거주하였다.
  • 두포리(杜浦里)

    • 개울물이 내려오다 이 마을에 와서 막혀서 이름하였다.

  • 석사리(石寺里)

    • 옛날에 석사라는 암자가 있었으며 마을 이름을 寺명에 연유하여 지었다.
  • 지혜리(智惠里)

    • 지혜산이 존재하므로 마을 이름을 산명에 따라 이름하였다.
    • 지혜산(智惠산) : 높이 1,024m의 명산

  • 분지수리(分池水里)

    • 회양군으로부터 흘러내려오는 금강천이 두못을 이룬곳에 마을이 발달하였다.
    • 막골 : 임시로 지은집이 골짜기에 많이 있었음
    • 구미말 : 옛날 강아지풀(구미초)이 무성하였음
    • 삼포말 : 인삼을 재배하는 삼장이 많았음

  • 인패리(印佩里)

    • 1759년 당시 95가호에 384인(여 185인)이 거주
    • 후평(後坪) : 뒷들이라고도 부르며 논이 발달하였음
  • 암리(岩里)

    • 마을에 암석이 많이 분포한데서 지은 지명이다.
  • 조천리(鳥川里)

    • 마을 앞개울의 모양이 까마귀 주둥이 모양과 유사하다 하여 이름하였다. 1759년 당시 91가호에 380인(여 181인)이 거주하였다.
    • 회골(檜谷) : 전나무가 골짜기에 많이 분포하고 있어 이름함

  • 점방리(占方里)

    • 수입면의 소재지로 사방을 훤히 내다볼 수 있어 날씨를 점칠 수 있다는데서 연유하여 이름하였다. 1759년 당시 49가호에 194인(여 95인)이 거주(일제때 3일, 8일 개시)
    • 오리벌 : 들이 넓은데 비유하여 말함
  • 지경리(地境里)

    • 철원ㆍ회양군 경계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
    • 절골 : 옛날 절(암자)이 있었음
  • 대정리(大井里)

    • 큰우물(大井)이 많이 존재하므로 이름하였다. 1759년 당시 48가호에 291인(여 141인)이 거주하였다.
    • 물다리 : 마을 주위의 개울에 다리를 많이 만들었음

  • 천리(泉里)

    • 샘이 지하로부터 솟아나므로 이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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