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를 먹게 된 동기
옛날 아주 오랜 옛날.
사람이 소로 보이던 때가 있었다. 어제까지도 사람으로 보이던 것이 갑자기 소로 보이므로 사람들은 날마다 사람을 잡아먹었다. 더구나 잡아먹는 것은 모르는 사람만이 아니고, 한 마을 사람이나 심하면 부자 형제 사이일 때도 있었다. 하루는 한 청년이 마을 사람들과 늙은 황소 한 마리를 맛있게 먹고 나서 보니 그것은 바로 자기의 아버지였다.
"아버지, 아버지, 이 천하에 머리를 들지 못할 불효 놈을 용서해 주십시오. 그저 모든 것은 이 두 눈 때문입니다. 이 두 눈에 아버지가 소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아버지, 어이…어이…이 일을 장차 어떻게 하나."
청년은 땅을 치며 목을 놓아 통곡하였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얼마 동안을 울다가 일어난 청년은 얼굴에 굳은 결의의 빛이 완연했다.
"찾아가 보자, 어디고 한없이 가면 반드시 사람이 소로 보이지 않고 사람으로 보이게 하는 약이 있을 것이다. 나는 목숨과 바꾸더라도 그 약을 구해다가 이 불행한 마음을 건지고야 말리라."
굳게 결심을 한 청년은 이튿날로 곧 길을 떠났다. 집을 떠난 청년은 걷고 또 걸어서 한없이 갔다. 그러나 청년이 가는 곳에는 어디에도 마음을 먹은 약이 없었다. 그리고 그 나라에서도 사람은 소로 알고 날마다 잡아먹고 있었다.
"흥, 어느 곳이든지 모두 다 그 모양이로구나."
청년은 한숨을 지으며 크게 한탄했다. 그렇다고 마음에 결정한 것을 단념해 버릴 수는 없었다. 청년은 쉬지 않고 자꾸만 걸었다. 이렇게 하는 동안에 세월이 흘러서 청년은 어느덧 늙은이가 되었다. 머리가 세고 등이 구부러졌다. 그렇지만 마음먹은 약이 있는 나라는 눈에 띄지 않았다. 눈이 어둡고 다리에 힘이 빠져서 이제는 빨리 걸을 수가 없었다.
그는 지팡이를 짚고 걸어가는 동안에 어떤 고요하고 아늑한 마을에 이르렀다. 푸른 산과 맑은 냇물을 끼고 집들이 총총히 들어서 있었다. 그는 마을 어귀에 이르러 늙은 소나무 아래에서 다리를 쉬었다. 근처에는 밭이 있고 거기서는 알 수 없는 향기로운 냄새가 풍겨왔다.
"그 냄새, 참 좋다. 무슨 풀이기에 저렇게 좋은 냄새를 풍기는 것일까?"
그는 밭을 둘러보며 입 속으로 중얼거렸다. 밭에는 기다란 풀이 가지런히 가구어져 있었다.
"거기에 앉아서 쉬는 낯모를 분은 누구요?"
이 때 소나무 뒤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다보니 흰 구렛나무가 산들바람에 흔들리는 노인이었다.
"네, 나는 지나는 나그네인데 다리가 아파서 잠깐 쉬고 있습니다."
"보아하니 젊지도 않은 분이 어디를 가시는 길이시오?"
"허허, 나는 새파란 청년이었건만 사방으로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동안에 이렇게 늙었답니다."
"원 저런, 그래 무슨 볼일로 그렇게 떠돌아다니시오?"
"약을 구하러 다닙니다."
"무슨 약이오?"
"사람이 소로 보이지 않고 그대로 사람으로 보이게 하는 약 입지요."
여기서 나그네는 자기나라 사정과 자기가 한평생을 떠돌아다니게 된 까닭을 하나도 빼지 않고 자세히 이야기했다.
"허허, 그것 딱한 사정이로구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노인은 가엾다는 듯이 나그네를 바라보았다.
"사실은 우리 고장에서도 옛날에는 사람이 소로 보여서 날마다 잡아먹는 실수를 저질렀소. 그러다가 저기 저 밭에 심은 풀을 먹은 후부터 비로소 사람이 사람으로 보이고, 소는 소로 보여서 그런 잘못이 없었소."
이 말을 듣고 나그네는 뒤집힐 듯이 놀랐다.
"어쩐지 냄새가 좋더군요. 그래 저 풀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저 풀은 파라는 것이오. 맛도 대단히 좋고."
"아아, 이제야 소원을 풀었습니다. 나에게 그 풀을 조금만 나누어 주십시오."
나그네는 너무도 기뻐서 땅에 꿇어앉아 노인에게 간청을 했다. 그리하여 파 씨를 한 봉지 얻어서 품속에 깊이 간직했다. 가슴에 기쁨을 한 아름 안고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남향 밭, 기름진 곳을 골라서 곧 파 씨를 뿌렸다. 그리고는 즐거움을 참지 못해서 마을로 들어갔다. 그러나 슬픈 일이 있었다. 사람들의 눈에는 나그네가 소로 보였기 때문에 모두 도끼를 들고 덤벼들었다.
"아니오. 나는 소가 아니라 사람이오."
하고 나그네가 기겁을 하고 소리쳤으나 소용이 없었다.
"얘, 그놈의 소 매우 크게 운다."
하며, 사람들은 마침내 나그네를 잡아먹어 버렸다. 밭에 우거진 파를 사람들이 발견하여 먹은 것은 그 후의 일이었다.
풀이 하도 향기로워서 먹어보니 맛도 또한 기가 막히게 좋아서 사람들은 날마다 반찬으로 먹게 되었다. 그런 후로 사람들은 사람을 소로 보는 일이 없어진 것이다. 이렇듯 나그네의 노력과 희생으로 마을에는 끝없는 평화가 깃들었다는 것이다.
※ 1972년 박영준의 《한국의 전설》에 소개하고 있다.